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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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일보 - 담임 폭언에 "죽고 싶다"는 초등학생...때려야만 학대인가요?
작성일2022-08-15

담임 폭언에 "죽고 싶다"는 초등학생...때려야만 학대인가요?


입력 : 2022-08-01 23:00


원문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80112240002783?did=NA



서울 송파구 대형 유치원에서 정서학대를 당한 피해 아동 장재희(6·가명)양이 피의 교사 C씨를 떠올리며 '혼내 주세요'라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다. 재희양은 지난해 2월쯤 C씨에게 음식을 억지로 먹도록 강요당한 이후 트라우마가 심해졌다. 재희양 측 제공


지난해 5월, 울산 Y 초등학교에서 지금껏 명랑하게 학교 생활을 하던 한다율(10·가명)군은 어머니 염승혜(가명)씨에게 대뜸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같은 반 친구들 역시 마주칠 때마다 “담임 선생님을 감옥에 보내 달라” “신고해 달라”는 등 담임 교사 A씨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아동들의 거부감 표출이 점점 심해지자 염씨는 A씨의 학대를 확신했다. 염씨는 다율군에게 A씨 발언을 녹음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다율군은 "그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후 스스로 녹음기를 들고 학교에 갔다. 녹음기에는 초등학교 3학년을 향한 심각한 욕설과 강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몸에 멍과 상처가 남는 물리적 폭력만이 학대는 아니다. 아동학대 중에서는 폭언, 음식 강제로 먹이기 등 정서학대도 상당하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만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에 신고 접수된 정서학대 사례가 8,732건에 달했다. 같은 해 신체학대 신고 접수 사례(3,807건)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외상이 없고 아동의 진술만 있을 경우, 처벌이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이와 학부모는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교사의 폭언 녹음해 보니


다율군의 담임 A씨는 숙제를 안 해 온 아동에게 “집에서 부모가 관리를 안 해 주니 이 모양”이라며 막말을 쏟았다. 놀이 활동 때 그 아동만 구석에 혼자 있게 한 뒤, 다른 아이들에게 “아까 쟤처럼 하면 똑바로 된 사람으로 못 큰다”며 모욕했다.


수업 시간에 답을 먼저 말한 학생에게는 “네가 뭘 안다고 그딴 소리를 하냐”고, 심판 역할을 맡아 ‘준비, 시작’을 외친 학생에게는 “이 XX 누가 네 마음대로 준비, 시작이냐”며 고함을 질렀다. "문제에 대한 답을 어디에 쓰느냐"고 질문한 다율군에겐 “이 XX, 선생한테 반항하는 거냐”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고 폭언했다.


심지어 수업 도중 스피커 기능을 켜고 염씨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학생들이 다 듣는 상태에서 “다율이가 수업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알렸다. 전화를 끊은 직후엔 다율군에게 “넌 이제 집에 가면 네 엄마에게 어떻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녹음 물증이 있어 A씨는 아이들에게서 분리됐고 비정기 전보 등 징계성 조치를 받았다. 재판도 진행하고 있다.


정서학대의 심각한 피해 증상

피해는 심각했다. 염씨는 “아들이 원래 잠을 잘 자는데, 자다가 갑자기 ‘안 돼’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나는 일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다율군은 며칠 등교를 쉬다가 임시 담임 선생이 배치되자 등교했다.


염씨는 “아이가 교문 앞에 서는 순간, 치아에서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온몸을 벌벌 떨더라”며 “결국 경비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가 교실 앞까지 데려다줘야 했다”고 설명했다.


각종 강박 증상도 보였다. 한동안은 집안에 있는 모든 문을 걸어 잠가야만 잠에 들었다. 손톱을 물어뜯거나 손 냄새를 맡았고, “죽어야겠다” “죽고 싶다” 등 당시 9세로서 하기 힘든 비관적인 표현도 했다. A씨 폭언 이후 생긴 증상들이었다.


염씨는 “같은 반 다른 학부모와 연락이 닿아 들어 보니, 평소 밝던 딸 아이가 아들과 같은 시기에 등교 거부를 했다더라”며 “그 아이는 문 밖으로 안 나가는 등 대인기피증 증상을 보이고, 밥을 먹은 지 30분도 안 돼 다시 먹을 것을 찾는 등 폭식증과 유사한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학대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그러나 다율군은 아직도 손 냄새를 맡는 버릇이 있고, 종종 “선생님이 우리 집에 찾아올 것만 같다”며 자신의 방문을 걸어 잠글 때가 있다.



3주면 지워지는 CCTV



녹음과 같은 직접 증거가 있으면 다행이다. 물증 확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 마포구 서강SLP 어학원에 다니던 영훈(8·가명)군은 지난해 2월 담당 교사 B씨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어머니 홍유호(가명)씨가 아이를 어학원에 데려다주고 나오던 길에 우연히 폐쇄회로(CC)TV에 B씨가 영훈군을 밀치는 장면이 찍힌 것을 목격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 수사 결과 B씨는 영훈군 자리를 외딴 섬처럼 따로 배치해 투명인간 취급하고, 수시로 밀치고, 친구들이 남긴 죽을 먹게 하는 등 9일간 총 170건에 이르는 학대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CCTV 증거가 없을 경우, 아동이 아무리 명확히 진술해도 증거로 잘 채택되지 않는다. B씨가 약 5분간 영훈군을 밀치더니 분이 안 풀린 채 교실 밖으로 끌고 나가는 장면을 발견됐다. 영훈군은 “선생님이 빈 교실에 끌고 가 밀고 치고 때렸다”며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했다.


하지만 빈 교실의 CCTV는 복원하지 못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청 여성청소년수사대 관계자는 “어린이집은 법적으로 60일 이상 CCTV를 보관하게 돼 있지만 사건이 발생한 학원이나 유치원에는 그런 의무사항이 없다”며 “기기 용량상 문제로 2, 3주 만에 영상이 새 영상으로 덮이고 나면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교실 밖에서의 학대 혐의는 제외됐다. 홍씨는 “애초에 피의 교사 동선을 따라 모든 CCTV가 확보됐더라면 수사가 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호소했다.


CCTV 증거가 없어 기소조차 안 된 사례도 있다. 장재희(6·가명)양은 지난해 2월쯤 송파구의 한 대형 유치원 교사 C씨에게 음식을 억지로 먹도록 강요당한 이후 트라우마가 심해졌다. 재희양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머니 이주현(35·가명)씨에게 당시 상황을 식단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강박 증세를 보였다. 재희양은 신경정신과에서 중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소견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CCTV가 이미 지워진 상황이라,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일관된 아동 진술, 믿을 수 없다?



세 사건은 모두 피해 아동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됐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아동 정서학대 사건은 원래 진술 분석도 잘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물증이 명확할 때 기소의견 송치가 되고, 그렇지 않을 때에야 진술 분석이 이뤄진다.


송파구청은 재희양 사건에서 사례판단회의, 아동심의위원회를 열었는데 전문가들은 “아동이 실제로 학대를 당했다면 (피해) 증상이 즉시 드러났어야 했다”는 이유로 학대 판단을 보류했다. “아동의 트라우마가 학대에 의한 것인지, 부정적이고 반복적인 대화로 인해 구체적인 내용이 변형되고 감정이 고조된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문가의 의견은 다르다. 이홍석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외상 반응은 수개월 혹은 10년이 지나서도 활성화되며 외상 경험 직후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또 “부모와의 대화, 해바라기 센터 면담, 정신과 방문 등은 치료의 일환으로, 오히려 외상 경험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지적했다. 변주은 아동학대 전문 변호사도 “피해 아동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다면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성인인 피의 교사들의 증언은 수사기관의 판단 근거로 곧잘 쓰였다. 교사 B씨는 영훈군을 교실 밖으로 끌어낸 이후의 상황에 대해 “빈 교실에 들어가서 대화만 나눴다”고 경찰에 진술했고, 결국 그곳에서의 학대 혐의는 적용받지 않았다.


심지어 재희양을 학대한 혐의를 받던 C씨는 경찰 신고 전 유치원에서의 최초 진술과 신고 이후 두 번째 진술이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경찰은 “적어도 경찰 신고 이후에는 C씨의 진술이 일관적이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 끝나야" 심리치료도 늦어져

염씨는 관할 아보전에 연락해 다율군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을 문의했다. 그러나 아보전 관계자는 “구청에서 ‘피해아동 개입 계획서’를 통보하기 전까진 우리가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2020년 10월,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 조사에 대한 공공화를 위해 '아동복지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그간 아동상담소·아동보호시설 등 비영리법인 위탁으로 운영되던 아보전이 아동학대 조사 업무를 떠안고 있었는데, 시행령 개정 이후 지자체 전담공무원에게로 그 권한이 넘어갔다. 이제는 지자체의 학대 조사가 끝나야만 사례관리 단계에서 아보전이 개입할 수 있다.


염씨가 구청에 연락했더니, 구청은 “재판을 통해 학대 혐의에 대한 결론이 나야 개입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염씨가 ”재판까지 얼마나 걸릴 지도 모르는데 그때까지 애를 이대로 놔두냐”고 호소하자 구청은 “그러면 개인이 알아보시고 병원을 가시라”고만 안내했다고 한다.


해당 구청 관계자는 한국일보의 문의에 “이후 아보전과 논의해 해당 아동에 대한 심리치료를 선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청은 당시 선조치를 하면서도 염씨에게 “(다율군 치료부터 먼저 진행하는 것에 대해) 다른 곳에는 비밀로 해 달라”고 당부했다.


영훈군 역시 혐의 인정까지 기다리느라 초기 심리치료 지원을 받지 못했다. 홍씨는 “신고를 한 게 지난해 2월 말인데 피의자 조사가 같은 해 9월에야 끝날 정도로 경찰 수사가 늦어졌다”며 “그 다음 달인 10월에야 아보전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는데 이미 우리 사비로 6개월간 사설 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난 뒤라서 어이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홍씨는 아보전의 뒤늦은 치료 제안을 거부하다가, 학대 규명 증거가 될까 싶어 약 한 달 전부터 제안에 응하고 있다.



학대 신고 의무자들의 직무유기



염씨는 A씨의 학대 사실을 교장과 논의하려 했다. 그러나 교장은 한 달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교감의 대응은 더 심각했다. 학대 신고는커녕 염씨에게 “A씨가 학대 의도가 있던 게 아니라 목소리가 커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일이 커지지 않게 엄마들에게 잘 설명해 달라”고 회유할 뿐이었다.


교장, 교감은 모두 교사 직군으로서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 해당한다. 결국 이들은 구청 조사를 통해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각각 과태료 처분을 받았고, 동시에 해당 학교 직에서 물러났다.


서강SLP 어학원 원장 D씨 역시 학원 종사자로서 신고의무자이지만 오히려 피의 교사를 두둔하기 급급했다. 홍씨에 따르면 피의 교사 B씨의 학대가 발견일이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D씨는 “알아보니 처음이 맞다”며 거짓으로 해명했다. 홍씨가 반발하자 D씨는 그날 저녁에야 B씨의 상습적인 학대를 인정했고, 경찰 신고가 이뤄진 뒤에야 B씨를 권고사직 처리했다.


홍씨는 D씨도 아동학대 방조 혐의로 함께 신고했다. D씨는 기소의견으로 송치됐지만 지난 6월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서에는 ‘방조 증거가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결국 홍씨는 D씨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6월 항고장을 제출했다. 서강SLP 어학원 측 변호사는 “성실히 재판에 임하겠다”는 입장만을 밝혔다.


지자체가 조사 맡으며, 전문성 후퇴

아동학대 조사 권한을 지자체로 넘긴 이후 오히려 책임 떠넘기기와 피해 아동 방치가 더 길어졌다는 문제제기가 나온다.


중앙 및 지역 아보전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경험이 있는 홍창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사무국장은 “아동 정서학대 사건과 관련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민원을 전국 단위로 많이 받고 있다”며 “아동 정서학대 조사 능력이 오히려 후퇴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홍 사무국장은 이어 “정서학대는 신체학대·성학대에 비해 깊숙한 개입이 특히 어려우므로 수사관 및 전담 공무원, 아보전 담당자들의 전문성이 필수적”이라며 “구청에서 ‘학대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추가 조사를 시도하지도 않거나, 경찰이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더 들여다보지 않으면 정서학대는 규명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또 “아동 정서학대 조사에 대한 매뉴얼은 있지만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았을 때에 대한 패널티가 없는 것도 문제”라며 “간혹 피해 아동 어머님께서 ‘열심히 조사해 주는 공무원을 만나 운이 좋았다’고 말씀하시면 ‘어느 지역·기관이든 편차 없이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행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지적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 회장은 "성범죄의 경우 상황을 명확히 기억하는 피해자의 증언에 증거 능력이 있는데, 아동학대의 증거 능력이 다르게 취급될 이유는 없다고 본다"며 "아이가 편하게 진술할 수 있는 환경에서 얻어진 녹취자료 역시 증거 능력이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이어 "정서학대가 아동의 마음에 가하는 상처는 우울증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학습장애·사회 부적응, 더 나아가 극단적 선택과도 직접적 관련이 있다"며 "정서적 학대가 한 사람의 일생을 철저히 파괴할 수 있는 심각한 범죄 행위라는 인식을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